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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르르씨_영화 드라마

멋진 하루 - 돌아서지만 웃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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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감독의 영화들을 우연치 않게 정리하다가, 잠시 잊고 있었던 영화 '멋진 하루'(2008)가 생각이 났습니다. 일본 타이라 아즈코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하정우의 능글능글한 연기와 전도연의 내공 9단 연기를 볼 수 있습니다.

이윤기 감독 영화의 특성상, 특별한 스토리보다는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따라 즐기는 맛이 있습니다. 아, 이윤기 감독의 다른 영화에 비하면 스토리가 그나마 특별하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멋진 하루'라는 제목을 붙일 만큼, 뭐 대단한 스토리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맨 마지막 전도연이 돌아서며 허탈하게 피식 웃는 장면을 보면 - 아 어쩌면 정말 멋진 하루였겠구나 -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맨 마지막 이 장면을 보기 위해, 나머지 120분을 봐야 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짜고짜 "돈 갚아"...옛 연인의 재회


짙은 스모키 화장을 한 희수(전도연)는 경마장에 있는 병운(하정우)을 갑자기 찾아옵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 350만 원을 갚으라고 말하면서요. 둘 사이는 맨 처음 알아채기 힘들지만, 헤어진 지 1년이 다 돼가는 옛 커플입니다.


병운은 딱 봐도 능글능글한 것이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구구절절 변명들만 늘어놓습니다. 그는 희수의 돈을 갚기 위해 아는 여자에게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희수의 차를 같이 타고 돈을 꾸러 다니기 시작합니다. 한 때 사랑했던 남자지만 도저히 믿을 만한 구석이라곤 보이지가 않습니다.

이전에는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갑자기 채권자와 채무자가 된 두 사람. 희수는 알고보니 직장도 잃고 결혼도 못하고 돈도 없습니다. 서른 살을 넘겨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전 남자 친구에게 꿔준 돈은 꼭 받고 말겠다고 결심한 듯합니다.

병운은 그 사이 결혼을 했지만 또 이혼을 했습니다. 부모님에게서 받은 돈과 전세금까지 빼서 도전했던 사업은 실패해서 모두 날리고, 지금은 갈 곳도 없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능글능글한데다 여러 여자에게 급전을 빌리러 다니는 걸 보니, 여자관계까지 복잡한 듯합니다. 희수의 시선을 싸늘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병운의 표정은 뭐가 그리 좋은지 해맑습니다.


그래도 '멋진 하루'


병운이 만나는 사람은 참 다양합니다. 재벌 기업 회장부터 우연히 만났던 대학후배 부부, 술집 여자, 사촌, 미혼모인 여자 동창 등등... 하지만 그들과 병운의 관계는 너무 쿨해 오히려 돈독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처음엔 대책 없는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오히려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듯한 참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유독 해가 짧은 겨울, 하루가 빨리 지나갔습니다. 저녁이 다 되가면서 희수는 점점 병운이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찌 보면 희수보다 더 밑바닥인 상황인데도, 많은 사람들과 시시덕거리며 저리도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지... 병운을 만났던 여자들은 입을 모아 그가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말을 합니다.


희수는 단순 빌려준 돈이 아니라, 어찌보면 위로가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라해지고 기댈 곳이 없는 희수이지만, 누군가는 '아직 괜찮아'라고 따사하게 얘기해 줄지도 모르잖아요. 그 말 한마디를 기대하며 병운을 찾아온 것은 아닐지.



그 하루 동안 두 사람의 볼 일이 끝나고, 희수는 차에서 병운을 내려줍니다. 그리고 백미러를 통해 병운을 살짝 봅니다. 슬며시 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병운과 하루를 보내면서,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지 깨달은 것일까요? 만약 그랬다면 희수에겐 이 날이, 멋진 하루였음은 분명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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