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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르르씨_영화 드라마

티벳에서의 7년 - 오랜만에 보는 인생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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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 인생 영화 '티벳에서의 7년'을 갖고 왔습니다. 벌써 24년 전인, 1997년 개봉한 영화로 브래드피트의 리즈 시절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해 티베트로 간 주인공이, 달라이라마를 만나면서 인생관, 더 나아가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영화이기 때문에 서양인의 눈으로 동양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동양에서도 티베트는 신비로운 나라이기 때문에 철학적, 정신적 측면을 강조하려고 노력한 모습이 보입니다.

특이한 점은 장 자크 아노라는 프랑스 감독이 연출했다는 것이며, 중국에서 티베트 촬영 허가를 내주지 않아서 아르헨티나에서 대부분 촬영했다고 합니다. 여자 주인공인 라크파상초는 실제 티베트 출신의 인도 여배우가 맡아, 영화에서 이질감이 전혀 없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주인공 하인리히 히러(브래드피트)는 오스트리아의 산악인입니다. 1939년 히말라야의 낭가파르바트를 등정하겠다며 야심 차게 출발합니다. 아내가 임신해 있는 상태지만 아랑곳하지 않죠. 자신의 명예만을 위한 도전이었고, 그렇게 빙벽을 타다가 여러 번 위기를 맞고 끝내 철수하게 됩니다.

그 무렵 유럽에서는 전쟁이 발발하고 하인리히는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됩니다. 아내에게는 이혼을 통보 받았고요. 갈 길을 잃은 하인리히는 가까스로 탈출해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곳인 티베트로 향하게 됩니다. 이때 아들이 세 살쯤 되었으려나요.

티베트에 도착한 하인리히는 처음부터 환영받지 못합니다. 일례로 맨 처음 티베트 사람들이 하인리히에게 몰려들어 손뼉을 쳐주는데, 하인리히는 이를 환영의식이라 생각하고 접근했다가 오히려 두들겨 맞습니다. 이는 잡귀를 몰아내기 위한 티베트만의 의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어린 티베트 14대 달라이라마인 '쿤둔'의 호기심으로 인해 잠시 머물 것을 허락받습니다. 달라이라마란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란 뜻입니다. 그리고 하인리히는 포탈라궁에도 출입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큰 특혜를 받은 하인리히는 달라이라마에게 서양의 과학과 언어를 직접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또 티베트인들이 즐길 수 있도록 영화관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갑자기 인부들이 영화관을 짓지 못하겠다고 하는데요, 땅에서 지렁이가 나와서 살생을 할 수 없기 때문. 그들은 부모든 조상이든 사람이 죽으면 지렁이가 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결국 지렁이를 다른 장소로 옮긴 후에야 영화관이 완성되죠. 이렇듯 모든 생명을 중시하고 귀하게 여기는 동양적 사상이 에피소드 곳곳에서 묻어나옵니다.

중국의 침공...오스트리아로 귀환

어린 달라이라마 '쿤둔'에게 제일 큰 걱정은 중국으로부터의 간섭과 침략이었습니다. 어느 날 쿤둔은 그에 대한 꿈을 꾸고, 하인리히는 꿈일 뿐이라며 위로해줍니다. 그러나 우려했던 일은 실제 현실로 일어납니다. 중국군으로 인해 티베트 사원이 파괴되고, 많은 선량한 시민들이 희생되죠. 그러나 달라이라마는 어떤 폭력도 거부하며 평화로 맞서겠다고 말합니다.

“어차피 해결할 일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되지 못한다면 이 또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린 달라이라마가 말합니다. 하인리히가 그에게 망명을 권유하지만, 그는 끝까지 국민을 섬기겠다고 하죠. 그리고 하인리히에게는 자신의 즉위식을 본 후, 고국으로 돌아가 좋은 아빠가 되라고 말해줍니다.

1951년 오스트리아로 돌아온 하인리히. 이미 재혼한 아내가 그를 맞이해줍니다. 하지만 달라이라마의 뜻대로 좋은 아빠가 되어 나중에 아들과 함께 티베르를 등반하기도 합니다. 그 사이 티베트는 중국의 공격에 폐허가 되었고, 달라이라마는 인도로 망명해서 망명정부를 세웠습니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이렇게 끝이납니다. '1959년 인도로 망명한 14대 달라이 라마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평화적인 해결을 간구하며 현재 망명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198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하인리히 하러’와는 하러 가 93세로 사망할 때 까지도 좋은 벗으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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